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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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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1004login 2025. 9. 1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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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고무신


비 오는 오후,
낡은 돌담 밑 흙길 위에
빨간 고무신 한 짝이
뒤집힌 채 누워 있었다.

누군가 황급히 달아나다 벗겨진 것일까,
아니면 너무 오래 묻혀 있다가
빗물에 밀려나온 것일까.

나는 그 신발 앞에서 멈춰 섰다.
가만히 바라보니
고무신의 붉은 빛이
비와 흙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었다.



빨간 고무신은
어린 시절의 비밀을 품은 듯
나직이 떨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
장터 어귀에서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와 함께
웃음을 걸었다.

좁은 골목마다 뛰어다니며
달빛에도 흙먼지에도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강가의 돌다리 위를 건너며
넘어져 울던 아이를
끝내 다시 일으켜 세운 것도,
바로 나였다.”

고무신의 목소리가
빗방울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 신발을 바라보는 순간
나는 잊었던 장면들을 떠올렸다.

여름, 논두렁길에 앉아
메뚜기를 잡던 손길.
겨울, 군불 냄새 속에
아궁이 앞에서 발을 말리던 웃음.
그리고 봄, 첫 소풍날
새 옷보다 더 자랑스럽게
발끝을 내밀던 아이의 눈빛.

빨간 고무신은
그 모든 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다.
아이들은 자라서 떠났고
어른들은 분주한 걸음 속에서
신발을 잃었다.

남겨진 고무신은
세상 구석에서 조용히 잊혀졌다.

하지만 그 붉은 빛은
시간에 지지 않고
다시 길 위로 떠올랐다.



나는 문득 알았다.
그 신발은
누군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먼 훗날을 향해
미리 두고 간 발자국이라는 것을.

그래서 빨간 고무신은
기다린다.

다시 누군가의 발끝에 끼워져
비에 젖은 흙길을 달리고,
강을 건너고,
꿈을 꾸고,
약속을 맺을 그 날을.



빨간 고무신은 말한다.

“나는 단순한 신발이 아니다.
나는 길을 기억하는 그릇,
웃음을 담는 상자,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세대를 위한
작은 등불이다.”



그날 이후,
나는 비 오는 길을 걸을 때마다
발밑을 살핀다.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르는
빨간 고무신 한 짝을 위해.

그 신발이 있다면
나는 알 것이다.

세상이 잊은 기억도,
잃은 약속도,
다시 돌아와 발끝에 매달릴 수 있다는 것을.



빨간 고무신,
그대는 세상에 없는 신발.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세상에서 가장 오래 남을 신발이다.


ᆢ ᆢᆢ

빨간 고무신

골목 끝,
비에 젖은 흙길 위에
작은 빨간 고무신 한 짝이 뒤집혀 있다.

아무도 신고 가지 않은 신발은
마치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진흙 속에 반쯤 묻혀
누군가의 발자국을 기다린다.

나는 묻는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

빨간 고무신은 대답 대신
빗방울을 머금은 채,
살며시 울음을 번진다.

옛날, 장터 어귀에서
엄마 손을 놓치던 아이의 웃음,
강가 돌다리 위에서
서로 마주 달리던 친구의 숨결,
여름 땡볕 아래서도
끝까지 벗지 않았던 그 단단한 약속―

모두가 떠난 뒤에도
고무신은 기억을 발끝에 묶어 두었다.

세상에 없는 신발,
한 짝의 빨간 고무신은
시간을 거슬러 흘러가는 강물에
마지막 붉은 빛을 띄워 보낸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그 신발은 결국
누군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먼 훗날 찾아올 길목에
미리 두고 간 것임을.

그래서 오늘도,
빨간 고무신은 조용히 숨 쉬며
비의 냄새와 함께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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